이명박 정부, 민간모금기관까지 정권의 산하기관으로 만들어 통제하려해
손숙미 의원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부개정법률안 폐기돼야 마땅해
지난 6일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789)을 발의하였다. 이명박 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를 대신하여 발의한 것이 공지의 사실인 이 법안은 “전문모금기관의 승인제도를 통해 민간모금시장의 경쟁과 다원화를 꾀함으로써 민간모금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함”이라고 법 개정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능동적 복지 하에서 민간복지재원을 정권의 의도대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며, 여기에 더하여 그간 정부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갖고 자율적으로 운영되어 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에 대한 길들이기의 성격을 담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김종해 가톨릭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약속한 능동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은 확보하지 않은 채 공동모금회의 해체와 민간모금기관의 통제에 열을 올리는 정부와 한나라당을 규탄하며, 민간모금시장 질서의 커다란 왜곡과 퇴행을 가져올 이번 개정안의 자진 철회를 촉구한다.
개정안은 복수의 민간전문모금기관을 통해 국민의 기부 선택권을 보장하고 민간모금시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복지부 산하에 차관이 위원장인 전문모금기관위원회를 설치하여 이들 기관에 대한 지정, 평가 및 지원 기능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전문모금기관협회를 두어 이들 기관간의 모금액의 배분 및 조정, 모금의 전문지식 개발, 종사자 훈련 등을 행하도록 하는 등 전문모금기관의 지배구조와 운영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4월 사회복지계와 시민사회가 국민의 자발적 성금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관리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명분하에 만들었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을 스스로 뒤엎는 자가당착적 법안이다. 최근 복지부는 공동모금회의 3천억 원에 가까운 모금액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 문제라고 규정하고, 공동모금회가 민간기관으로서 갖게 되는 의사결정상의 부분적 오류를 확대해석하여 자신들의 통제권 강화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이번 개정안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팽창하는 복지재정 수요를 국가예산보다는 민간의 재원으로 대체하려는 국가복지 책임의 방기를 분명하게 의도하고 있다. 국가 감세정책에 의한 복지예산을 민간모금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인가? 이번 개정안은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이번 개정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첫째, 이 법안은 전제부터가 잘못 되어있다. 법안은 지금까지 민간모금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가 마치 경쟁체제가 도입되지 않아 기부에 대한 국민선택권이 확보되지 않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으나 이미 민간모금시장은 충분히 경쟁적이며 국민들은 매일 쏟아지는 각종 기부홍보물에 노출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1인당 연간 기부액이 113만원인 반면 한국의 연간기부액이 10만원 수준으로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이유는 모금기관간의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도 기부 받는 기관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이 제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출범 당시 연간모금액 150억 원에서 2007년 2,500억 원의 모금액을 기록한 가장 대표적이고, 공익적인 기관의 하나인 공동모금회의 지위를 끌어내리고 비슷한 공동모금기관들을 양산한다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둘째, 이 법안은 전제만이 아니라 그 해법 역시 잘못되어 있다. 전문모금기관의 승인과 평가 등 감독을 위해 복지부 산하에 전문모금기관위원회를 두고 5년마다 평가한다는 것은 정부가 민간모금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기관 운영의 독립성과 배분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는 모금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특히 해방 후 거의 50년간 존재해 왔던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그동안 기부금 모집에 대한 정부의 통제권을 행사한 대표적인 악법으로 성토의 대상이 되어 겨우 2년 전에 전부 개정된 점을 상기해보면 이번 개정안은 또 다른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부활시키는 악법이 될 것이다.
셋째, 이 법안은 지난 10년간 민간의 자율기구로서 어렵게 성장하며 ‘사랑의 열매’를 통해 발전해온 공동모금회의 성과를 하루아침에 붕괴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공동모금회는 현재 중앙본부와 16개의 지회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경제계, 종교계, 법조계, 시민사회계, 학계 등의 명사들과 전문가들 수천 명이 자원봉사의 형태로 결합되어있는 순수민간 자율적 모금 및 배분기관이다. 공동모금회는 소외되고 고통 받는 취약계층을 위해 민간의 자발적 기부를 촉발시켜 지난 10년간 15배나 모금액을 신장시켰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큰 잡음 없이 기부액을 배분해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산하기관도 아닌 공동모금회의 회장과 사무총장을 사퇴시키려 했고,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복지부 책임자에 대한 징계권고 결정을 내리는 등 괜한 우여곡절에 휩쓸렸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 같은 정황상 공동모금회를 고사시키거나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발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발전시키고, 그 성과가 자리 잡길 염원해 온 그간의 사회적 노력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엄청난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넷째, 이 법안은 급조된 탓인지 조악함과 부적절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우선 기존의 공동모금회에 적용되던 이사회 및 분과위원회 구성, 모금과 배분에 대한 규정을 향후 수없이 탄생할 모든 전문모금기관에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제각기 운영되는 수많은 또 다른 공동모금회들의 난립에서 오는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연말이면 수많은 기관들이 ‘사랑의 열매’, ‘사랑의 꽃(?)’, ‘사랑의 나무(?)’ 등을 내세워 신문과 TV에 나와 경쟁적으로 기부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8월 31일이면 수많은 전문모금기관들이 일제히 사업공고를 내어 수혜기관의 입장에선 한때만의 배분 폭탄을 맞게 함으로써 상시적인 사업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또한 이들 전문모금기관들마다 1명의 회장, 3명의 부회장, 12명 이상 각계대표가 고르게 포함된 이사, 그리고 4개 분과에 80명 이상의 위원들을 확보한 거대한 조직이 꾸려지게 됨으로써 아마도 인력난을 겪는 진풍경까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다섯째, 개정안은 전문모금기관협회라는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정부가 재정을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이 협회의 회장과 임원, 사무국을 운영하는 데에 국고를 낭비하며 이 기관을 통해 상시적인 전문모금기관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대신하려는 노림수까지 두고 있다. 개정안의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정부는 최소한 초기설치에 필요한 임대료 등 2억 원, 전문모금기관협회 운영에 3억7천백만원 등이 소요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나 이 정도로 그칠 사안이 아님은 불 보듯 뻔하다. 이는 재정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도 배치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개정안은 복지부가 오랫동안 꿈꿔온 대로 차제에 공동모금회를 산하기관화 하겠다는 움직임과, 민간재원의 동원으로 국가재정투여책임을 대신하고 동시에 코드인사가 관철되지 못한 기관에 대한 길들이기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합쳐진 악법이며 졸작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러한 불순한 동기와 잘못된 내용으로 가득한 법률이 통과되어 이제 막 피어나는 기부문화와 민간기관의 자율적 의사결정 구조의 정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예산이 아닌 민간재원 투여를 통한 사회복지기관의 자율적 사업집행 등의 긍정적 효과를 무력화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설혹 공동모금회가 민간의 자율적 운영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가 있다면 현행 법 하에서도 사회복지법인에 대해 갖고 있는 복지부의 기본적인 감독권과 이사 해임권, 그리고 감사원의 감사권, 심지어는 국회의 국정감사권 등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18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이제 첫 국정감사를 끝내고, 예산심의 및 법률심의에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경제위기로 인해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수많은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마당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부개정안과 같은 법을 심의하는데 쓸데없는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18대 국회에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두고두고 사회복지계에 오점을 남긴 의원으로 기록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이 뒤늦게나마 최선의 선택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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