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17면 해설기사 제목은 “일, 퍼주기 복지 계속 땐 국가부도 빠진다”이다. 논리적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과연 일본에 퍼주기식 복지가 있기는 한가? 일본은 미국과 함께 선진국 가운데서 복지가 매우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36%가량으로, 스웨덴·노르웨이 등에 견줘서는 20%포인트나 낮고, 영국·프랑스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낮다. 한국보다는 낫지만, 유럽에 견줘보면 일본엔 이렇다 할 복지제도가 없다.
민주당 정부 들어 퍼주기식 복지정책으로 국가재정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 말은 어떤가? 실제로 민주당은 큰돈이 드는 복지정책을 대거 공약한 게 사실이니까. 어린이수당, 고교 무상화, 고속도로 무료화,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농가호별 소득보장 등을 모두 이행하려면 연간 11조8000억엔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010회계연도 일본의 세출은 전년에 견줘 3조7512억엔 늘어났을 뿐이다. 2011회계연도 예산안에서도 1124억엔 늘어나는 것으로 안이 짜여 있다. 민주당의 정책이 재정에 끼친 타격은 올해 말 1000조엔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국가부채를 0.4% 늘린 정도다. 민주당은 이미 전면적인 공약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일본의 재정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세수보다 더 많은 액수의 국채를 발행해 나라살림에 충당하고 있다. 연간 세출에서 4분의 1을 국채 이자(2010년 29조6491억엔) 지출에 쓰고 있다. 복지를 확충하지 않아도 고령화로 사회보장비 지출이 계속 늘 텐데 돈 나올 구멍은 잘 안 보인다. 일본의 나라살림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정책이 주된 원인”(보고서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 2008년 9월)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일본이 1992년부터 2000년 사이 무려 9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에 124조엔을 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건설족 배만 불렸다. 1994년, 1998년, 1999년 세 차례에 걸친 감세는 소득세·법인세 세수를 크게 줄여놓았다. 건설업자와 부자들에 대한 ‘퍼주기’ 정책이 오늘날 일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본 경제는 오랜 세월 디플레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내수 부진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는 수출 증가로 잠시 좋아지는 듯했지만, 무지개였다. 이른바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결과 급증한 저소득계층은 쓸 돈이 없다. 미흡한 복지제도를 보며 앞날을 불안해하는 이들은 저축에 매달린다. 해법은 가계의 소득을 늘려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는 것이다. 자민당의 아소 다로 내각이 2008년 말 세 환급 명목으로 국민 한 사람당 1만2000엔씩을 나눠주는 제도를 도입했던 것도 실효성 논란이 많긴 했지만, 같은 고민에서였다. 해법은 알아도, 한번 골병이 든 재정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요즘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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