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만 넘으면 정부가 2주마다 평균 400호주달러(약 44만원)의 노령연금을 준다. 수십억 원짜리 주택을 갖고 있더라도 1주택자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저소득 무주택자에겐 일주일에 140호주달러(약 15만원) 정도 렌트 보조금을 주고, 일부 대학생에겐 용돈까지 대준다.
슈퍼 애뉴에이션(Super annuation)이라 불리는 퇴직연금은 세계 최강 수준이다. 근로자가 여기에만 가입해도 은퇴 후 정상 소득의 60~70%가 매달 연금으로 나온다. 몽땅 세금으로 대주는 노령연금까지 합치면 현역 시절 월소득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당연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다.
호주는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넘어 G20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값 급등 덕분에 금융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는 국가 중 하나다.
`자원 부국의 복지 풍요를 떠들어 봤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탓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복지 논쟁이 한창인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호주를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선진국으로 만든 키워드는 `자원`이 아니라 `미래(노후)를 위한 투자`다.
호주에선 월소득 450호주달러 이상인 근로자는 무조건 퇴직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지금은 고용주가 임금 가운데 매달 9%를 따로 떼서 근로자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해준다.
이렇게 30여 년간 꼬박꼬박 적립하고 주식 채권 등에 장기 투자해 불렸다. 현재 총 연금자산은 1조3000억호주달러(약 1443조원)까지 늘었다. 증시 시가총액(1조2000억호주달러)을 추월했고,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말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이 324조원이고, 퇴직연금은 이제 겨우 30조원이 쌓였다. 둘을 합쳐봤자 작년 명목 GDP 총액(1039조원)의 34%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인구수가 호주의 2배쯤 되니 인구 1인당 공적연금 적립금은 겨우 8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니 국민연금 수령액을 해마다 조금씩 줄여나가도 2060년이면 완전 고갈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로선 부러워 죽겠는데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이만 한 국가 노후대비책도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임금에서 매달 떼는 퇴직연금 의무 적립금을 현행 9%에서 12%로 대폭 인상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3%포인트나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듯 향후 주요 선거마다 이 퇴직연금 개혁안이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해 당장 쓸 돈을 줄이고 적립해서 불리자`는 식의 소위 `키우는 복지`는 흔히 우파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호주에서 `퇴직연금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수십 년째 목을 매는 정당은 자유당(보수)이 아니라 노동당(진보)이다. 당장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국엔 절대다수인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반면 자유당은 임금상승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독일 스웨덴 등 유럽에서도 노후 보장이 핵심 복지정책이고, 선거에서도 단연 쟁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키우는 복지` 얘기를 꺼내는 잠재 대선후보는 거의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도 `자칫 표만 까먹을 수 있다`며 쉬쉬한다.
하나같이 얼마 되지도 않는 국고를 헐어서 당대에 나눠 먹자는 소위 `빼먹는 복지` 공약 일색이다.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무료급식을 넘어 교육ㆍ의료까지 공짜로 제공하자는 구상에 대해 노동당 소속 호주 총리는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재원 부족 논란에 "복지를 왜 돈으로만 보느냐"고 항변하는 여권 유력 대선주자 논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참에 국회에서 3년째 낮잠만 자고 있는 퇴직연금 활성화 관련 법안들 조문이라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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