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부채 심각..선진국 중 최고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이 9년만에 강등됐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의 국가 채무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 중 처음으로 신용등급 강등 폭탄을 맞았다.
일본의 국가 채무는 대부분 자국민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리스나 아일랜드와 같은 파국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로 최대 보루인 저축이 줄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불안 요인이다.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되면서 미국도 불안하게 됐다. 지난 14일 S&P와 무디스는 국가 부채를 문제 삼으면서 미국이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 A(AAA)'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S&P 9년만에 日 국가 신용등급 강등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27일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하향조정했다.
S&P는 일본의 재정 적자가 계속 부풀고 있다면서 장기 지역 통화 표시 채권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AA-' 등급은 S&P가 매기고 있는 국가 신용등급 체계에서 네 번째 등급이다.
S&P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S&P는 이날 성명에서 일본의 국가 채무가 세계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집권 민주당의 채무 감축 정책 노력이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진 이후 엔화 환율과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출렁였다. 이날 82엔대 초반에서 움직였던 달러당 엔화 환율은 83.05엔으로 1엔 넘게 상승했다(엔화 가치 하락). 일본 국채의 CDS 프리미엄은 4bp 오른 84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 국가 부채 심각..GDP 200% 육박
현재 일본의 재정은 구제금융을 수혈받은 그리스, 아일랜드 등 유럽의 주요 재정불량국보다 심각하다. 장래에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보다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27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2011년 회계연도 말에 누적 채무가 997조7098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이르는 것으로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만약 단기 채무까지 합산할 경우 이 비중은 204%로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는 그리스(137%)와 아일랜드(113%)를 능가하는 수치다.
일본이 세계 2위 외환보유국인 것을 감안해 외환보유액과 공공 연금 등을 정부 자산에 합산하면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중은 120%로 낮아지지만, 이 역시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편에 속한다.
일본의 국가 채무는 경기 부양의 산물이다.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사실상 동면에 들어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1990년대에 정부 지출을 대거 늘렸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 복지 비용 증가도 정부 채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
◆ 거대한 저축이 방패..디폴트 가능성은 낮아
다만 최근 구제금융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일본의 국가 부도(디폴트) 가능성은 낮다. 일본의 예금 규모는 부채를 충당할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가계 자산은 약 1400조엔으로 GDP의 세 배를 넘는다.
일본 정부의 빚을 떠안고 있는 주체가 자국민이라는 것도 국가 부도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재 일본 국채(JGB)의 95.4%는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국채는 거의 자국 통화 표시 채권이다. 국채의 70%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쥐고 있었던 그리스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시들어가고 있긴 하지만 세계 최대 채권국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일본의 대외 순자산은 225조5000억엔에 이른다. 또 그리스와 달리 경상수지는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세 인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다른OECD 국가보다 세금이 낮은 편이라는 점에서 세금 인상을 통한 세수 여력도 높은 편이다. 일본의 국민 소득 대비 과세 부담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 저축 줄고 있어..세수 증대가 해법
하지만 일본의 인구 고령화로 저축이 줄면 일본 정부는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일본의 저축률은 하락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10% 이상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3%에 불과하다.
로이터 통신은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정부로서는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무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일본 국채 금리는 상승하고 있다. 다만 최근 금리 상승의 원인은 재정위기 우려보다는 미국 경제 전망 개선에 있다.
현재 일본이 국가 부채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는 소비세 인상이 거론되고 있다. 소비세가 1%P씩 높아질 때무다 일본 정부는 약 2조5000억엔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소비세를 당장 인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간 총리는 현행 5%의 소비세를 10%로 두 배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이력이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맞고 있는 일본에서 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은 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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